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문단 편집) === 야구는 왜 미국의 [[국기(스포츠)|국기]]가 되었나 === 미국에서 문화적으로나 생활적으로 '''전미의 여가(America’s Pastime)'''이라고 불릴정도로 [[대한민국]]의 [[태권도]], [[일본]]의 [[스모]]와 같이 야구가 미국의 '''[[국기(스포츠)|국기(國技) 스포츠]]'''이다. 야구만큼 미국인들의 문화, 생활이 반영된 스포츠는 없다. 야구는 [[미식축구]], [[농구]]보다도 이른 19세기 후반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유일한 프로스포츠며, 20세기 초 미국의 야구 스타 '''[[베이브 루스]]''' 열풍으로 인해 미국에서 야구에 대한 인기와 메이저리그의 인지도가 전국구급으로 상승하여 미국의 국기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베이브 루스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메이저리그는 없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절대 과장된 것이 아니며, 현재도 베이브 루스의 영향력은 여전해서 베이브 루스가 생전에 쓰던 물건이 경매장에 나오면 역대 최고가를 갈아치울 정도로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베이브 루스의 신화적인 활약 덕분에 야구는 미국에서 [[9.11 테러]] 이후 2000년대 초중반까지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199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파업 사태|1994년 파업]], 약물 스캔들 등 누적된 악재로 인한 야구팬들의 이탈과 경기시간이 짧고, 빠르고 역동적인 스포츠를 선호하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젊은 층 팬들의 유입 감소로 미국 최고 인기 스포츠의 자리를 미식축구에 내어주게 된다.[* 이런 이유로 현재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야구의 세계화, 야구 룰 개정으로 인한 역동적인 플레이 유도, 경기시간 단축 등을 통해 야구 인기 회복을 위해 젊은 층이 야구에 유입할 수 있는 다양한 변화를 시도 중이며 특히 타 종목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한 흑인 야구선수들을 길러내기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 흑인 야구 장학생을 키워내려고 하는 중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120년이 넘는 긴 역사로 인해 야구는 여전히 미국의 국기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산업화,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냉전시대]], 20세기 미국의 인종차별에 저항했던 [[재키 로빈슨]][* 미국의 유색인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했었고, 이 당시 야구가 미국의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만큼 재키 로빈슨이 미국 스포츠계와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 유색인종이 미국의 메이저 스포츠 리그에서 활동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장본인이라고 해도 모자르지 않을 정도로 당시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이유로 재키 로빈슨은 베이브 루스도 하지 못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전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고, 2003년 [[의회 명예 황금 훈장]]을 수여받았다. 미국 스포츠계에 끼친 엄청난 업적으로 [[NCAA|미국대학스포츠협회]]는 재키 로빈슨 상을 만들어 해마다 사회공헌 활동이 활발한 북미 스포츠 선수들에게 시상하고 있다. 이 상을 받은 대표적인 북미 스포츠 선수로는 NBA의 [[르브론 제임스]]가 있다.] 등 오늘날의 미국이 있게 된 역사의 대부분과 함께한 것이 바로 야구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인들에게는 야구가 곧 미국의 역사라는 인식이 자리잡혀 있다. 그래서 야구를 알면 미국의 역사가 보인다는 말도 나올 정도로 상대적으로 국가의 역사가 짧은 미국의 역사 대부분과 함께 보냈기에 자연스럽게 미국의 국기 스포츠가 되었다. 국가 상징성에서 야구의 위상은 미국의 다른 종목들을 압도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최초의 흑인 NFL 선수{{{-2 (Fritz Pollard.1920년 데뷔)}}}와 최초의 흑인 NBA 선수{{{-2 (Earl Lloyd와 Chuck Cooper, 1950년 데뷔)}}}도 분명 역사에서 의미가 큰 인물들이지만, 미국 역사에서 상징성으론 단연 최초의 흑인 MLB 선수인 [[재키 로빈슨]]{{{-2 (1947년 데뷔)}}}이 가장 거대하다. 또한 미국의 국기 스포츠답게 카리브해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에게 야구가 전파되는 과정도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19세기~20세기 미국의 [[미국 식민제국|제국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도 세계에서 야구가 인기가 많은 국가들은 주로 과거 미국의 대외관계와 관련이 있으며, 미국의 힘이 미치는 곳에서는 항상 야구가 전파되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457|#]] 야구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유럽에서 그나마 독일이 [[베이스볼 분데스리가]]을 비롯한 야구리그가 활성화 되어있는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에 진군했던 미군에 의해 야구가 독일에 처음으로 전파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연합군 점령하 독일]]시기에 미군 지도자들에[* 특히 유럽 연합군의 최고사령관이었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야구를 굉장히 좋아했다. 아이젠하워는 군인이 아니었다면 야구선수가 됐을거라고 종종 말하기도 했고,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하기 전에 가명을 쓰고 마이너리그에서 급여를 받으며 선수생활을 했었다는 의혹이 있을정도로 야구를 좋아했다. 하지만 정작 웨스트포인트 시절에는 야구팀에 들어가지 못해서 당시 웨스트포인트 야구팀 스타였던 미군 합찹의장 [[오마 브래들리]]와 함께 방과후에 야구를 했었다.] 의해 독일에서 야구가 활성화 되었으나 군정이 끝나고 미군 지도자들이 떠나면서 독일에서 야구는 크게 정체되었다. 미국의 모든 스포츠 중 유일하게 봄-여름-가을 7개월(4월~10월)에 걸쳐 매일매일하는 프로스포츠 리그, 미국의 국기 그 자체가 바로 MLB이다. 또한 입장료와 중계료는 경기 숫자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2020 시즌 코로나-19로 인해 60경기만을 치렀고 그로 인해 구단은 중계권료, 광고수입, 관중수입을 얻지 못해 3조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적자를 봤고, 선수들은 연봉이 반의 반토막이 나는 등 리그 전체가 막대한 손해를 봤다. 그래서 그런지 2021년 시즌 162경기를 강행하는 것에 선수노조와 구단들이 합의하는데 그리 큰 이견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종목 특성상 많은 경기를 하기 힘들어 한 시즌에 17경기밖에 못 하는 미식축구에 비해 한 시즌 162경기, 원한다면 매일 경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야구의 특성이기 때문에 매주 일요일마다 한 경기씩 하는 미식축구는 성대한 축제 개념이라면 매일 경기를 하는 야구는 일상생활 같은 개념으로 미국인들의 삶에 각인 되어있다. 그래서 미국의 유명한 격언, 속담은 물론이고 미국인들만 쓰는 은어들도 야구용어가 굉장히 많이 쓰인다.[* 예를 들어 [[커브볼]]은 속임수라는 의미로 쓰인다.] 미국인들의 문화적 동질에 관해 첨언하자면, 미식축구의 경우는 서부 개척시대 미국인들의 "땅따먹기"를 반영하여 좀 더 진취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야구의 경우는 [[냉전]] 시대에 [[소련]]과 맞붙던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상징하고 미국 특유의 자본력이 그대로 스포츠에 옮겨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야구장에 야구만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피크닉]]을 즐기는 볼 파크 문화로 [[햄버거]], [[핫도그]] 등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미국인들의 여가 문화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또 미식축구와 야구에 반영된 미국인들의 성향도 있는데, 미식축구나 야구나 공수 기회가 공평하게 돌아가고 플레이와 플레이 사이에 텀을 두는, 이른바 '턴(turn)제 스포츠'로 기록적이고, 분석적이며[* 특히 기록과 분석을 계량적인 측면에서 집대성한 것이 [[세이버메트릭스]]다.], 긴장감 있는 것을 선호하는 심리와 동시에 미식축구의 과격한 몸싸움, 태클이나 야구의 홈런, 탈삼진과 [[벤치 클리어링]] 등 파워풀하고 경쾌한 마초적인 것을 좋아하는 취향 등 미국인들의 심리가 잘 반영되어 있는 스포츠 중 하나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역사]] 항목에서 왜 야구가 미국에서 인기있었는지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